Korean Script for the talk with the director on the film "Itaewon"

이태원 상영회 & 감독님과의 대화 행사:

강유가람 감독님의 강연글과 사전질문 답변

 

<이태원>에 대하여 기획 의도

'이태원'은 1970년대부터 미군을 대상으로 한 성산업에 종사한 세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기지촌으로서의 이태원의 의미와 어떻게 한국사회가 이태원을 바라 보았는지에 대한 배경을 설명한 후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1950년대 중반에 미8군 쇼 무대에 출연하는 연예인과 쇼단에 지급하는 달러가 당시 한국의 연간 총 수출 금액을 능가했을 만큼 기지촌 경제의 규모와 영향력이 컸습니다.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성매매산업 역시 번창하였으며, 1990년대까지도 이태원은 미군들의 유흥지로서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이후 미 당국이 테러에 대한 자국민 보호 규제조치로서 미군 상대 클럽들의 출입금지업소(Off-limits) 지정을 실시하고, 이후 용산 기지 이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이태원은 급격한 쇠퇴기를 거쳤습니다. 이렇듯 미군의 등장으로 만들어지고 성장했던 이태원이라는 공간은 미군이 퇴장하자 다시 버려진 공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태원은 미군 기지에 인접해 있으면서 얻게 된 문화적 이질성 덕에 한국사회 내 에서 색다른 유흥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한국 대중음악의 자양분이 되었던 오랜 역사의 음악 클럽, 성소수자들이 주로 가는 바(bar)들을 비롯, 최근에는 이슬람 사원 근처의 무슬림 커뮤니티로 인한 이국적인 레스토랑에 다양한 예술가들이 꾸린 작업실 까지 더해 이태원은 이질성, 다양성, 해방성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렇듯, ‘글로벌’한 문화적 이미지를 획득한 이태원은 당시 새로운 자본들이 탐내는 공간이 되었으며,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밀려들어오는 자본 앞에서 각자의 삶에 따라 다양한 전략과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태원의 ‘이미지’를 포장하는 새로운 문화와 자본의 등장,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등장은 이 공간을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었습니다.

제작진은 2014년 예전 미군 달러가 이태원을 지배하던 시절 화려했던 유흥가 후커힐 ('창녀언덕') 언저리에서 세 명의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군을 대상으로 한 유흥산업에 종사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기지촌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이태원에서 계속 후커힐 언저리를 맴돌 수밖에 없는 나키. 40여 년간 미군 대상 클럽을 운영해 오면서 예전의 영화를 잊지 못하고 이태원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는 삼숙, 후커힐을 떠났지만 여전히 이태원에 머물고 있는 영화까지. 이 여성들의 삶과 이태원의 변화는 서로가 서로를 추동한 동력이었지만, 우리는 그동안 그 여성들의 삶에 대해 알지 못 했습니다. 사실 미군 상대 성매매를 기반으로 한 산업으로 달러를 벌어들였던 이태원은 오랫동안 낯설고, 더럽고, 무서운 곳이라는 이미지를 벗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낙인은 이태원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삶에 찍힌 주홍글씨와도 같은 것입니다.

촬영 당시 이태원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지금은 상권이 많이 죽어가고 있지만 당시에 이태원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낙인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도심의 주거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듯 보이는 이태원이 여성들의 눈 앞에 펼쳐져 진 것입니다. 여전히 기지촌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이 어떻게 이 재개발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을 지 궁금해졌습니다. 이태원에서 살아온 이 여성들의 삶에 찍힌 낙인은 그렇게 쉽게 없어 지지 않습니다. 거주자로 환영받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이 여성들이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되지 않습니다. 제작진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오래전부터 그곳에 살았지만, 이런 한국 사회의 인식에서 잊혀지거나 아예 기록에 남을 수 없었던 이 여성들의 이 야기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이 여성들의 삶의 기억과 일상을 함께 보면서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도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곳을 살아내고 살고 있는 여성들을 타자화하고 묻어버린 한국 사회와 자본의 욕망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를 원했습니다.

제작 배경

저는 전작 <모래>에서 공간과 그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맺는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한 공간의 '개발'은 개개인들의 이후 삶의 모습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에서 공간의 '개발'은 폭압적인 국가의 주도 하에 사적 자본이 축적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개개인들은 삶의 계획을 이에 끼워 맞춘 욕망으로 만들거나, 나가 떨어지거나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이는 자신이 가진 자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기에 자유로운 선택지라기보다 '강제적 선택'으로 보입니다. 용산역 앞 '집결지'는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섬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낙인 찍힌 공간들은 기억 속에서, 역사 속에서 애도되지 못한 채 사라집니다. 이태원의 '후커힐' 역시 그렇게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할 때,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가 고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놀러 다닌 이태원과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찾아가는 이태원 사이의 간극에 ' 공포'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낙인'의 이미지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 다큐멘터리의 기록 과정이 이태원에 대한 낙인의 이미지와 공포를 그저 돈의 힘으로 묻어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어떤 방식으로 대면하고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 는 과정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삼숙, 나키, 영화와의 만남에 대하여

위에서 설명했듯이 현장 지원단체에 있었던 지인을 통해 나키라는 인물과 영화라는 인물 을 만났습니다. 그러던 중 나키님이 이태원에 대장부 같은 여자가 있다며 삼숙님을 소개해 줬습니다. 공간의 변화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주목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 분들의 이야기를 기록에 담고 싶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접촉하거나 아웃 리치를 통해서 현재 클럽에 계시는 분들도 담고자 했지만 접근이 쉽지 않아 이 세분으로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초기에는 기지촌 여성으로서의 아픔에 좀 더 주목하려고 했는데, 계속 만나보니 이분들의 다양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시기에 그 산업에 종사했다고 해서 그 정체성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동네 사람, 이웃 주민으로의 정체성도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세 분의 개성이 각각 다르고, 삶에 대한 태도도 매우 달랐습니다. 나 자신도 잘 모르는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라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관계 맺기를 하는 데 노력을 많이 했고, 일상 속에서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도록 카메라가 있든 없든 편하게 계실 수 있을 정도로 정기적으로 찾아 뵈었습니다. 사실 기지촌에서 사셨던 분들은 자신의 위치와 경험에 따라 각각의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들의 생각이 어떤 맥락일지 나 자신이 해석하는 과정이 제일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촬영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장면, 인물, 구술 내용에 대하여

오프닝에 나오는 소독차의 장면은 메르스가 한국에서 유행하던 시기입니다. 매번 촬영했던 장소지만 그렇게 소독차가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나키님이 벌떡 일어나서 걸어갈 때 주는 느낌이 힘있게 느껴졌습니다.

또 오프닝에 나오는 삼숙님의 비디오 테이프는 직접 찍으신 것인데, 유언 비디오라고 하면서 주셨습니다. 삼숙님은 언제나 씩씩한 모습인데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고, 삼숙님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사용했습니다.

영화님의 경우 늘 촬영할 때마다 집에 계셨지만 밖에 나가기만 하면 과거 영화님이 얼마나 마당발인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폴리캐틀 건물이 팔린 것에 대해 주민들과 이야기하는 장면은 우연히 포착한 장면입니다. 영화님의 성격과 거주민으로서의 관심사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키님의 부추씬의 경우도 우연히 촬영하게 된 것입니다. 우연히 나오는 드라마의 소리가 나키님의 인생의 한 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삼숙님은 다른 인물들과 거리두기를 많이 하시는 발언을 하셨는데 처음엔 당황했지만 그 맥락을 살펴보고 나니 이해가 되는 면이 있었습니다.

토론토에서 작년 상영된 전작 “우리는 매일매일”과의 연출 스타일의 차이에 대해서

“우리는 매일매일”은 친구들과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여서 나레이션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이태원은 관찰자적 시선에서 이 여성들의 삶을 바라보고 싶었고, 실제로도 나는 그들에게 스쳐 지나가는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음으로 그런 시선이 맞을 것 같았습니다. 다만 중간 중간에 제작진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가거나 질문을 보임으로서 카메라 뒤의 존재가 느끼는 당황, 혹은 의도 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서  

극영화 시나리오 작업과 <애프터미투> 라는 옴니버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